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탄 죽음의 행진 (문단 편집) == 참상 == [[파일:external/www.bataansurvivor.com/map.jpg|width=550]] 일본군은 승리했으나 내부적으로는 보급선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고 부대의 기계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포로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포로를 처형하라는 지시는 실탄을 소모하지도 않고 운송 수단도 필요없는 식량 배급 없는 장거리 행군이라는 형태로 실행했다. 포로들은 바탄 반도의 남쪽 끝 마리벨레스에서 북쪽 산페르난도까지 약 88㎞를 행군한 뒤 여기서 카파스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하여 카파스에서 오도넬 수용소까지 약 13㎞를 행군하였다. 항복 직전까지 체력이 매우 저하된 상태에서 식수와 식량도 주어지지 않아 행군에서 수많은 탈락자들이 발생했는데, 일본군은 상부 지시에 따라 이들을 총검으로 살해하였다. 그런데 한 육군 [[대령|대좌]] 하나가 이런 지시에 의구심을 품고 대본영에 확인해보자 대본영은 "그러한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답을 보내 14군측이 조사에 나서보니 [[츠지 마사노부]]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지시를 날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군 내 미국통으로 통하는 14군 사령관 육군 중장 [[혼마 마사하루]]는 서구권에서 포로 수용소를 운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인, 포로 간의 자치 조직을 결성해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노동을 시키는 형태를 주장했다. 포로 처형 지시가 한 파견 참모의 날조라는 것을 알아차린 14군은 즉각 지시를 철회했으나 이미 10,000여 명의 포로가 사망해버렸다. 다만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혼마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혼마 마사하루의 14군은 대규모 포로들의 장거리 이송을 계획하면서, 이동수단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가혹한 현지 환경에서 포로들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특히 물자 부족과 전염병 등으로 이미 체력이 약해진 포로들을 이송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가혹한 현지 환경을 고려하기는 커녕 포로들이 먹고 마실 식수와 식량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 육군 장병들이 포로 이송 과정에서 폭언과 폭행 등의 가혹행위를 가하는데도 이를 저지하기는 커녕 방관하거나 되려 조장하는 전쟁범죄 행위를 거리낌없이 저질렀으며, 심지어 상당수의 포로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일본군 장병들은 참혹한 이송 과정에서 탈진 등의 이유로 낙오된 포로들은 가차없이 살해했고, 극심한 굶주림과 갈증을 호소하는 포로 역시 마찬가지로 죽였다.] 7~8만 명에 달하는 연합군 포로들 중 약 1~2만 명이 이송 과정에서 사망했다. 츠지 마사노부가 처형 명령을 날조했다 주장하기 이전에 포로 이송 과정에서 필요한 최소의 조치조차 하달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 모든 사태의 제1책임자는 당연히 사령관 혼마 마사하루다. 일본군 장병들이 처형한 포로들의 수는 최대 수천 명이고 바탄에서 사망한 포로들은 대부분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다 탈진하거나 질병을 얻은 것이 원인이 되어 죽은 것이다. 종전 이후 연합군이 혼마 마사하루를 전쟁범죄 혐의로 재판에 기소한 것은 당연지사. 이러고도 혼마는 끝까지 자신은 포로들을 공정하게 대우했다고 항변했으니 사형 판결이 내려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